아브라함의 믿음 - 모리아산으로 떠난 믿음과, 칼 잡은 손을 멈춘 믿음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버지보다, 자기 아들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는 것을 고백 후

노년의 순탄함을 기대했을 수 있다.

 

하나님이 그를 불렀을 때에도(22:1)

언젠가 불러 네 몸에서 날 자를 후사로 삼겠다"고(15:4) 하셨던 것처럼,

또 언제인가 불러 "열국의 아비로 삼겠다"(:15:4, 17:1)고 하셨던 것처럼,

이번에는 어떤 복의 약속을 주시려나 기대했을 지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의 요구는 뼈를 도려내는 칼날 같은 것이었다.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쉽게 받아드릴 수도 없는 요구를 하셨다.

아들, 사랑하는, 독자 이삭, 이름 그대로 너의 웃음인 바로 그 아들을 바쳐라"는 것이었다.

 

아브라함은 그 동안 하나님을 의심했던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다.

100년이 넘는 긴 세월을 통해 마침내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법을 배웠다고는 하나,

이 명령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9:5)"하시며  이렇게 생명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일렀는데,

이제는 아들을 죽여야 하고 제물로 드려야 한다.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 할 것 임이니라'(21:12)고 하셨던 그 약속은 또 무엇이었습니까'"라고,

"이 죽음이 하나님께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그 이유라도 말씀해 달라"고 했으나 아무런 대답이 없으셨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그 이전의 약속을 믿고 이 번 만큼은 순종하리라 마음을 굳게 먹었을지 모른다.

 

굳게 먹은 마음이 흔들릴까봐 사라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으리라고 수 없이 다짐하며 가는 길은 얼마나 큰 고통 이었을까요.

그 삼일 길은 여느 때 보다 더욱 길지 않았을까요

이삭과 함께 집을 떠날 때 배웅하던 사라의 얼굴을 이삭 없이 돌아가 어떻게 마주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한 걸음의 발걸음을 어찌 뗄 수 있었을까요.

 

침묵 가운데 마음속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을 알려달라고 수없이 외치지 않았을까요.

 

침묵가운데 이삭이 부릅니다."내 아버지여"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의문썩인 이삭의 부름에 아브라함의 음성은 떨리고 더 말을 잇지 못합니다.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 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이삭의 이 질문앞에 육신의 아버지는 할 말을 찾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그 해결책을 미룰 수 밖에 없습니다.

"아들아 번제 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아브라함은 순종의 말, 믿음의 말로 답합니다.

 

마침내, 운명의 장소에 다다랐고,

아브라함은 이제까지 그가 쌓았던 중에서 가장 슬픈 단을 쌓고,

이삭을 화장하기 위한 나무는 가지런히 벌려 놓은 후 아주 놀라운 소식을 아들에게 전합니다.

 

"이삭아 네가 바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양이란다."

 

이삭도 아브라함처럼 받아드리고 저항하지 않았다 하드라도 희생 제물은 결박되어야 했습니다.

자애로운 아브라함이 죄 없는 아들의 손을 묶습니다.

그 손은 축복을 빌어 달라고 내 밀던 손이었고, 껴안기 위해 뻗쳤던 그 손이었습니다.

 

그들의 눈은 어디를 향하고 있었을까요.

마주보며 마지막 눈물로, 작별의 입맞춤을 주고받았을까요.

 

온전한 자유 속에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그 믿음,

진정 독자 아들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을 시험 하시고자 했다 할 지라도

아브라함은 이 고통의 순간을 피할 수 있는, 멈출 수 있는 명분을 찾지 않았을까요.

"하나님 이 정도면 확인되지 않았습니까"라고,

"길을 떠난 것 만으로도, 아들 이삭을 결박하는 것까지 만으로도 확인 하실 수 있지 않았습니까"

라고 말하지 않았을까요.

 

아무런 응답 없음에 아브라함은 칼을 높이 들었습니다.

진정 죽여야만 확인하실 수 있는 하나님 이시라면.....’

하고 손을 내리치려는 그 결정적 순간에 어디선가 다급하게 멈추라는 소리가 들립니다.

 

순간 혼란스러웠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껏 살아온 동안 느꼈던 것이지만 항상 결정적 순간,

분명한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행하려 하는 순간에 사탄의 유혹적 음성에 넘어졌던 기억들 때문에

이제는 현혹되지 않으려고 마음을 되잡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의 명령을 회피 할 만한 환청, 그럴 듯한 사탄의 유혹은 아닐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아브라함은,

현혹되지 않기 위해 마음을 더욱 굳게 먹고, 마음 변하기 전에 속히 실행해야 한다고

그래서 실행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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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진정한 순종 아닐까요.

멈추는 것,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믿음의 명령이라고 확신하고 질주하던 그 길에서

새롭게 변한 하나님의 명령에 순응하여 멈추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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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말씀하시면

주님 말씀 하시면 내가 나아 가리라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서리라

나의 가고 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뜻하신 그곳에 나있기 원합니다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리니

      연약한 내 영혼 통하여 일하소서

      주님 나라와 그 뜻을 위하여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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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22:9~12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2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