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반기시는 하나님

 

나와 나의  아내는 대학 초에 처음 알게 된 후 7년이 넘도록 사귀다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지겹지도 않더나, 싫증 나지도 않더나고 물어오는 이도 있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늘 생각만 해도 기쁘고, 가슴 설레었으며  만나고 돌아서도 또 보고 싶었으니까요

제가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습니다.

개인적으로 주님을 만나 사랑을 고백한 후 주님을 생각만 해도 기쁘고 힘이 났습니다.

두려움이 없었고 말씀은 같은 구절을 읽고 또 읽어도 읽을 때마다 새로운 감동이 있었습니다.

주님을 향한 그 첫 사랑의 감동은 여러분 모두에게도 그랬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 첫사랑의 감동을 늘 지닌 채 생활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너무 쉽게 잊고 살아 갈 때가 많습니다.

그 기쁨과 감동을 잃어버린 생활은 힘겹고 왜 그리 부대끼는 일들이 많은지요

저는 그럴 때마다 지난 일 들을 통하여 그 처음 사랑의 감동을 되살려 힘을 얻게 된 한 사건()이 있어  함께 나누려 합니다.

* * *

몇 해 전(1990) 크리스마스 전 날 이었습니다.

늦은 저녁 아내는 여느 때와 달리 말이 많아진 날이었습니다.

어느날 몰락해 버린 집안의 장남인 저를 통하여 그 장남과 결혼한 아내가 겪는 집안 문제의 갈등이 드러난 날 이였지요

성탄절 인데도 기쁘지 않았습니다.

자정 예배 후 집으로 돌아 왔을 때에도 그 전에 드러난 시집의 일들로 겪게 된 불편함 심기를 거침없이 토해내고 있었습니다.

참아내기 힘들었지만 한편 안쓰럽고 나와 결혼함으로 겪게 된 갈등이라 미안하기도 해서 그저 묵묵히 있었지요

보고 들어줄 이도 없는데도 텔레비전에서는 천지창조라는 영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시선은 그저 텔레비전을 향하여 말없이 있었지만 생각은 각각 격한 감정을 삭히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배경음악이 바뀌어 무심코 보게 된 장면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번제를 드리기 위해

모리아 땅으로 향하여 가는 대목이 비춰지고 있었고,

그 때 아내는 그 삭막하고 어색한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는 듯 이렇게 물었지요

당신은 하나님이 저렇게 하라고 요구 하시면 기꺼이 따를 수 있어요?

난데없는 물음이라 그 물음의 진의가 무엇일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알 수 없었지요.

한참 만에 글쎄..라고 답하면서도 스스로를 생각했습니다.

 

기꺼이 따를 수 있다고 하기에는 스스로 부족 했고  나는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하기에는 어쩐지 죄송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변명했지요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소유자에게나 명령 하시는 거야. 

그런 믿음이 없는데도 그런 요구를 하신다면 하나님은 얼마나 잔인하신 분인가?

적어도 그 며칠간 우리의 생활은 하나님이 그런 명령을 하시기엔 부족한 믿음 이었음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나 봅니다..

 

아내는 글쎄라는 답변이 반갑지 않는 듯 곤란한 질문에는 습관처럼 글쎄라고 애매하게 얘기 한다는 말에 덧붙여

불편한 마음을 풀어헤치고 있었지요

 

듣고싶지는 않았지만 그저 마음속으로 삭이면서  긴 한숨과 함께 나지막이 이렇게 중얼거리며 엎드렸습니다.

주님주님은 늘 나를 반깁니까?

저를 만나주시는 주님이 참으로 능력 있고 우리의 모든 것과 처한 환경을 낱낱이 아시는 분이라 하면서도

왜 주님을 부를 때 한숨이 나왔는지요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아마 꿈속 같기도 하고

가위눌린 듯한 느낌 속에서 언 듯 에이 이 녀석 이런 음성이 낮게 들려 왔습니다.

그 음성이 나를 책망하는 음성인데도 사랑이 가득한 음성으로 느껴졌습니다.

 참으로 못나고 측은한 그래서 꾸짖기에도 가엾은 이를 대하듯

심하게 혼내자니 자포자기 할 것 같고 그저 괜찮아지겠지 하고 두고 보자니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다

의미가 섞인 듯한 어조 였지요

나는 놀란 채 엎드려 귀를 귀우렸지만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고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에 대한 혼란스러움이 있었습니다.

 

잠시 후 이렇게 얘기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네가 어느날 아침에 눈을 뜨면 창 밖이 밝지 않더냐 그게 내가 너를 반기기 때문이다

난 고개를 떨구고 소리 죽여 울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못나고 허물 많은,

지극히 이기적이고 못된 저를 늘 반깁니까 라는 물음에 대한 주님의 응답인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는 중에도 주님께서 나를 늘 반긴다면 생활가운데 그 증표가 무엇인가 생각했습니다.

살아온 순간 순간을 돌아 본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어떻게 개입하셨고

사건 속에서 어떻게 은밀히 역사 하셨는가를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는데도 우린 너무 쉽게 잊고 삽니다.

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믿고 있었지만

그 사랑의 증표를 평생 잊지 못할 극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 속에서만 찾으려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구속사건은 나 개인만을 위한 사건이 아니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생각으로 그 귀한 증표를 우리는 값없이 받아드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계속해서 타이르듯 낮은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어느날은 네가 눈을 뜨면 하늘이 흐리고 비바람 칠 때도 있지 않더냐 그 것도 내가 너를 반기기 때문이다

소리 죽여 흐느낀다는 것이 고통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소리를 억누르지 못하고 목 놓아 울었지요

목이 메어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저 엎드린 가슴팍에서 “꺼억 꺼억소리만 나왔습니다.

그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잠을 깬 아내는 왜 그러느냐고 물었습니다.

12층 창밖에는 흰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고 나는 목이 메어 한참동안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음성은내가 너를 반기다는 표현 이었습니다.

아내는 너의 가족을,  너희들을 이라는 표현이 아니고 라고만 하시더냐 하고 시샘 섞인 눈빛을 보였지만

"내가 너를 반기다라는 이 말은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네가 말씀대로 행하며 너를 지키고,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돕고, 내가 너의 든든한 후견인이  되어주고, 너의 든든한 동업자가 되어 주고,

네가 아내를 포함한 너의 가족과 집안과 교회와 직장과 이웃들로 인하여 네가 가슴 아파하는 것을 그저 보아 넘기지 않겠다.

왜냐하면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의미가 아닌가요

 

여러분 모두에게도 그렇게 하셨지요

내가 너를 극진히 사랑한다 네가 나를 향하는 순간 순간마다 나는 너와 눈으로 마주치기위해 늘 너를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가 까마득히 잊고 있었지만 그 언제가 은밀히 약속하셨고 그 사랑의 약속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그 약속은 영원히 유효하다고

 

그날 이 후 휘날리는 눈송이만 봐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고 아무도 모르게 알려주는 은밀한 윙크처럼 느껴졌지요.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려도 하나님이 나를 알고 있다는 증표로 보였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였다고 하신 말씀에 비추어 본다면 저는 참으로 귀하게 선택 받은 자입니다.

 

제가 비록 겉으로는 보잘 것 없다 할지라도

세상 사람들이 내가 누구인지 알아주지 못한다 할지라도 나는 택함 받은 하늘나라의 왕족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왕족으로서의 당당함과 품위를 지키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저를 포함하여 우리교회와 속한 우리모두에게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벅찬 감격이 늘 살아 역사하기를 바라고

또 참으로 귀하게 선택 받은 하늘나라의 왕족으로서의 당당함이 생활가운데 드러나기를 원하고,

그 격에 맞는 품위가 갖춰지고 지켜지는 우리들의 모습이기를 원합니다.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