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와 약자


예수 그리스도는 앙갚음의 법칙에 빠져 있는 세상을 향해 산상수훈을 말씀하셨다.

한 대 맞은 것에 대해 똑 같은 앙갚음을 할 수 있는 강자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한다고는 전형 상상할 수 없는 세상을 향해 말씀하셨던 것이다,

예수그리스도께서 그러한 사람에게 요구한 무저항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승리이지 비겁한 행위가 아니다.

자신을 지킬 수 있으면서도 그리스도를 따르고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그 힘을 단념하는 강한 사람과

담대히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두려움에 빠져 나약하게 굴복하고 마는 사람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다 있다.

전자는 영적으로 승리한 경우이지만, 후자는 정신적으로 실패한 경우다.

    그러므로 내가 여기서 분명하게 정의를 내리려는 윤리는 저항과 무저항 사이의 타협, 

곧 편의주의적으로 이것 아니면 저것을 선택하거나 자신이 무사히 할 수 있을 때에는 자신을 방어하지만 

자신을 당당히 지키지 못할 때에는 굴복하는 행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우리가 말 하려는 윤리는 우리 행동의 밑에 깔린 동기들을 분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여 행동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당황하여 행동하는 것인지를 자신에게 묻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문제에서 자신을 속이는 경우가 자주 있다.

사람들은 자신을 주장하기 두려우면 자신의 침묵이 기독교적인 자기 희생의 결과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하지만 그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솔직히 기도드리면, 우리 각자가 보이는 관대함이 승리인지 패배인지를 깨닫게 된다.

    동일한 성경의 계시에 비추어 보면,

자신을 지킬 수 있고 또한 그러한 준비가 된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용서를 요구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만

소심한 성격에 넘어지는 사람은 굳게 서라는 말씀을 듣게 된다. 

이와 같이 영적인 삶은 생물학적인 반응의 수준을 넘어선다

그것은 강장의 힘을 깨뜨리고 약자는 강하게 한다.

그리고 영적인 삶은 항상 풍성하다

패배적인 관대함(이것은 잘못된 관대함이다.)은 정복자만큼 피정복자에게도 해롭다

    이와는 반대로 승리하는 관대함은 포기한 사람의 능력을 더욱 증대 시키고

불공평한 승리를 얻은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얻게 된다.

교회는 기독교적인 도덕성과 약한 반응을 너무나 자주 동일시 하는 바람에,

기독교적인 정신을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한 이미지로 전하게 되었다.

   이 두 가지를 혼동하게 함으로써 오늘날 교회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약한 사람들이 많다.

하나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는 말 할 수 없는 현상이다.

이 들이 겸손하게 자기를 감추고 너그러운 태도를 보이는 것은 사실 이들의 신앙은 자신의 정신 구조에 대한 승리라기보다는 

약한 행동에 대한 변명이라고 할 수 있다.

 

폴 투르니에 [강자와 약자]



2018.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