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었으면 살았을 걸

  

이런 글을 쓰지 않아도 될 수 있기를 나는 얼마나 바랐는가.

개인적인 친분을 갖고 있던 사람에 대해서 공적으로, 거기다가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정말 싫고 힘들다.

KOSTA의 강사로 가서 오정현 목사와 만난 후 수십 년간 비교적 친밀하게 교제했다.

오정현 목사는 내가 이사장으로 섬기는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의 부이사장으로 함께했으며

2년 전에는 제사 문제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에 상당한 액수의 연구비를 주었다.

내가 그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다.

나는 오 목사가 초청해서 사랑의교회에서 설교도 몇 번 했고,

사랑의교회와 오 목사는 내가 관계하고 있는 여러 단체에 후원과 도움을 많이 주었다.

그는 항상 예의 바르게 나를 대해 주었다. 개인적으로 그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을 할 어떤 이유도 없다.

평소에 대형 교회에 대해서 비판을 많이 했으나 사랑의교회는 그래도 건전한 편이라고 두둔해 왔고,

사람들이 오 목사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할 때는 말을 삼갔다.

 

그동안 나는 한국교회의 중요한 사건들, 특히 윤리적인 문제가 개입된 사건에 대해서는

거의 빠짐없이 공적으로 의견을 제시해 왔고 그것은 대부분 비판적인 것들이었다.

그런데 만약 이번 사건처럼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입을 다문다면 이는 일관성 없는 태도일 것이고,

사적인 관계 때문에 공정성을 상실했다는 비난을 받을 것이다.

더구나 나는 대학교 재직 시 교수 윤리위원회 부위원장과 위원장직을 역임하면서

표절 문제를 많이 다루었고 표절이 얼마나 심각한 잘못인가를 절감해 왔다.

교수로 일생을 보냈고 지금도 기독 학자들의 모임인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를 섬기고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심각한 표절 문화를 고치는 것에 일종의 의무감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의무감 때문에 정말로 쓰기 싫은 이 글을 쓴다.

 

오정현 목사의 표절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나는 대부분의 다른 그리스도인들처럼

오정현 목사가 즉시 사실을 시인하면서 철저히 회개하고 목사직을 당장 사임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오 목사의 표절은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음을 권영준 교수의 보고서가 너무나 분명히 밝혔기 때문에

어떤 해명도, 부인도 불가함을 알았다.

가장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해결은 철저한 회개와 회개에 합당한 행동이었다.

오 목사가 구차한 변명으로 자해 행위를 하지 않고

인정과 회개라는 너무나 분명하고 당연한 길을 택했더라면,

자신과 사랑의 교회도 살았을 것이고 한국교회가 입은 명예 손상도 다소 줄어졌을 것이다.

만약 그가 목사직을 사임하고 아프리카 오지 같은 곳에 가서 장애인을 돌보거나 빈곤 퇴치 운동을 시작했더라면

나는 앞장서서 그를 후원했을 것이다. 그리고 오 목사를 세웠던 고 옥한흠 목사가 살아있었더라면,

시간이 지난 후 그의 복권을 강력하게 주장했을 것이다. 한국교회 전체도 그랬을 것이다.

참으로 죽었더라면 명예롭게 다시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너무나 안타깝게도 그는 너무나 당연하고 번한 그 길을 택하지 않고 말았다.

우리 복음이 지닌 가장 아름답고 강력한 장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회개하면 용서받고 용서한다는 사실이다.

이 소중한 보배를 오 목사는 자기의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

나는 이 사실이 표절 그 자체보다 더 안타깝고 더 심각한 실패였다고 생각한다.

밧세바를 범한 다윗의 죄는 천인공노할 만행이었지만

나단 선지자의 지적을 받자마자 그는 철저하고도 진실하게 회개했고

그것이 그를 그전보다 더 위대한 하나님의 종으로 만들었다.

안타깝게도, 정말 너무나 안타깝게도 오정현 씨는 그럴 만한 신앙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 자신도, 그를 따랐던 사랑의교회도, 그를 후임으로 택했던 고 옥한흠 목사도,

그리고 한국교회 전체도 치욕을 당한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는 중요한 기회를 놓쳐 버렸다.

최근에 한 그의 '회개'는 아무도 인정할 수 없는 외식이며 오히려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한 허례에 불과하다.

 

우리는 적어도 사랑의교회 당회는 다르기를 바랐다.

고 옥한흠 목사의 제자 훈련을 받은 장로들이기 때문에 성경의 원칙에 충실할 줄 알았다.

오 목사의 표절을 인정함으로써 옥 목사의 유산을 완전히 저버리지는 않았음을 보여 주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그들도 성경의 원칙보다는 현실을 택하고 기독교적 양심보다는 인간의 지혜를 따르고 말았다.

불과 몇 달 전에 서울대 교수 하나가 논문 표절 때문에 교수직을 사임했다.

오 목사의 표절은 일반 논문보다 훨씬 더 중요한 학위논문에서 자행되었고 그것도 두 번이나 걸쳐 감행되었다.

게다가 그는 하나님 말씀을 대언한다는 목사였다.

다른 누구보다 더 정직해야 하고 더 진실해야 할 위치에 있으며 자신이 바로 정직 운동에 앞장섰다.

그런 사람이 저지른 그런 심각한 거짓을 겨우 6개월간의 설교 정지로 처벌한 것은 성경의 원칙,

기독교의 전통뿐만 아니라 어느 사회, 어떤 상식으로도 이해될 수 없는 처사다.

결국 사랑의교회 당회는 옥한흠 목사의 제자 훈련이 헛수고였음을 웅변적으로 증명하고 말았다.

당회가 올바로 판단했더라면 적어도 사랑의교회는 살 수 있었을 것이고

옥한흠 목사의 명예도 유지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은 오 목사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사랑의교회와 옥한흠 목사의 명예를 짓밟아 버렸고 한국교회에 고칠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한국 기독교가 두고두고 자랑할 수 있는 아름다운 교회 하나를 파괴하고 말았다.

 

사랑의교회를 사랑했고 옥한흠 목사와 친근했을 뿐 아니라 한국의 복음주의 기독교 신자의 한 사람으로

나도 이번 사건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러므로 나는 이 글을 쓸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권리 행사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 다시는 한국교회에 이와 같은 부끄러운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고

이러한 근시안적인 판단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잘못은 한 번으로도 지나치게 충분하다.

 

손봉호 /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자문위원장서울대 명예교수

2013..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