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만으로 사랑할 수 있기를..
설 연휴 기간 중에 형제들이 집에 모였다.
"이 다음, 나이 들어 힘없어지면 너네 들 힘들다고 나를 노인요양원에 보내면 안 된다.
나 죽고 너네 아버지 혼자 있을 때에도 너네 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면 가만 안 둔다"
농담처럼 언니는 자신의 딸들에게 이야기 했다.
동생은 ‘이런 것도 자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덧붙인다.
"나이가 들면서 이제 남편 옆에 있는 것 보다 자식 옆에 있고 싶어진다"는 언니 이야기도 이어졌다.
농담처럼 웃고 이야기 했지만, 곱씹어본 그 말들로 인한 생각의 끝은 깔끔하지가 않았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부모의 사랑’으로 비유할 때가 있지만
어찌 그 사랑의 온전함이 비교될 수있을까요
변치 않고, 희생적이며 무조건적인 사랑, 목숨마저 내어놓는 그 사랑을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 설명할 수가 없어서,
그나마 가장 이해 하기 쉬운 비유가 ‘부모의 자녀 사랑’ 이기 때문 일까요?
하지만 곱씹게 된 생각은 부모의 자녀사랑도 매우 불안전하고
때로는 이기적인 사랑 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 하시리이다 (시27:10)”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14:18)”는 말씀은
부모의 사랑이 아무리 깊고 위대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에 견줄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완전한 부모가 되어,
부모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완전한 사랑을 주지도 받지도 못한 사람들의 상처까지도 치유하시고
우리에게 상처 준 사람까지 품고 도리어 축복할 수 있는 넉넉한 은혜로 채우셨다.
그 사랑은
무조건이라 하면서도, 여전히 행위와 결과에 대한 조건이 무의식 중에라도 영향을 받게되는
이 불안전한 사랑을 다듬어 주실 거라 믿는다.
자녀를 향한 사랑도
행위에 대한, 결과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존재'자체만으로도 사랑 할 수 있는 그 능력이 나에게 있기를 바란다.
권력은 복종을 강요할 수 있지만 사랑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은 오직 사랑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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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용서도 감정의 결과가 아니라 '의지적 결단'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우리의 사랑은 아직도 불안전하므로....